2007년 9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방영된 MBC 월화 드라마 "이산"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대하 사극이다. 이병훈 감독의 연출과 김이영 작가의 극본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평균 시청률 26.4%, 최고 시청률 35.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누렸다.
이 글에서는 "이산"의 주요 등장인물, 줄거리의 흐름, 그리고 작품에 대한 총평을 통해 드라마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본다.
주요 등장인물
이산/정조 (이서진 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다.이후 세손 시절 내내 노론 세력의 음해와 암살 위협에 시달리지만, 강인한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 할아버지 영조의 엄격한 제왕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그는, 즉위 후 탕평책을 펼치고 실학자들을 등용하여 개혁 정치를 실현한다. 수원 화성 건설로 대표되는 부국강병책을 추진하며, 500년 왕조사에서 가장 열린 생각을 가진 현군으로 평가받는다.
성송연/의빈 성씨 (한지민 분): 10살 나이에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생각시로 입궁하여 정조 이산과 운명적인 인연을 맺는다.화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에 조예가 깊으며, 이산을 돕다가 궁에서 쫓겨난 후 도화서 다모를 거쳐 화원으로 성장한다. 이산과의 깊은 사랑을 나누며 후궁이 되어 문효세자를 낳지만, 세자가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아픔을 겪는다. 둘째 임신 중 장결병(간경화)으로 사망하며, 이산과 30년에 걸친 애절한 사랑을 완성한다.
영조 (이순재 분): 조선 제21대 임금으로, 손자인 정조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럴수록 더 엄하게 제왕학을 가르친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는 비극적인 결정을 내리지만, 이후 세손 이산을 왕위 계승자로 키우기 위해 혹독한 시련을 준다. 극강의 카리스마와 군기로 이산을 단련시키며, 조선 최고의 군주 중 한 명으로 묘사된다.
박대수 (이종수 분): 내관이 되기 싫어 궐을 탈출하려던 중 어린 이산과 송연을 만나 평생의 우정을 맺는다.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세자익위사가 되고, 정조의 가장 믿음직한 호위무사로 성장한다. 송연을 향한 짝사랑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주는 충직한 친구이자 신하의 역할을 다한다.
홍국영 (한상진 분): 이산의 책사로, 세손 시절부터 노론 세력의 음해를 물리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조 즉위 후 개혁 정치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중전 암살 모의를 꾸미다 발각되어 모든 권력을 잃고 귀양지에서 사망한다.
정순왕후 (김여진 분): 영조의 계비로, 노론 세력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이산을 견제하고 노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미며, 정조 시대 내내 개혁 정치의 최대 장애물로 등장한다.
효의왕후 (박은혜 분): 정조의 정비로, 성품이 조용하고 착하다. 이산을 사랑하는 송연에게 왕비로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송연의 선한 성품을 알고 그녀가 후궁이 되는 것을 적극 도와준다.
혜경궁 홍씨 (견미리 분): 사도세자의 비이자 정조의 어머니. 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지녔지만, 이산과 송연의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송연을 청나라로 보내는 등 복잡한 모습을 보인다.
줄거리: 비극에서 시작된 개혁군주의 여정
드라마는 1762년 임오화변으로 시작된다. 11살의 어린 세손 산은 상직소환(어린 내관)으로 위장하고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는 창덕궁 시민당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생각시 송연, 궐을 탈출하려던 대수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그림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사도세자는 뒤주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9년 후 1771년, 세손으로 성장한 이산은 노론 세력들의 끊임없는 음해 속에서 겨우 세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린 시절 이산을 돕다 궁에서 쫓겨난 송연은 도화서 다모가 되었고, 대수는 무과를 준비하며 다시 이산을 만날 날만 기다린다. 우연한 사건으로 세 사람이 재회하게 되고, 이산과 송연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신분의 벽과 주변의 반대로 헤어지게 된다.
1776년, 영조가 승하하고 이산이 정조로 즉위한다. 노론 세력의 극심한 반대와 암살 위협을 극복한 정조는 본격적인 개혁 정치에 나선다. 탕평책을 실시하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정약용 등 실학자들을 등용하여 새로운 조선을 만들어간다. 청나라에서 돌아온 송연은 화원으로 성장했고, 정조의 간절한 마음과 효의왕후의 도움으로 마침내 두 사람은 맺어진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믿었던 홍국영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중전 암살을 모의하다 발각되어 유배되고, 송연이 낳은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요절하는 비극을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송연은 둘째 임신 중 장결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정조는 깊은 슬픔에 빠진다.그 후에도 정조는 수원 화성 건설 등 개혁 정치를 계속 추진하며, 노론 벽파의 마지막 반란까지 진압한다. 그러나 정조 역시 49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아들 순조가 뒤를 잇는다.
총평: 역사와 드라마의 완벽한 조화
"이산"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군주 중 한 명인 정조의 삶을 통해, 한 인간이 어떻게 비극을 딛고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하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안고도, 할아버지의 혹독한 제왕학 교육과 노론 세력의 끊임없는 위협을 이겨내고 마침내 개혁군주로 우뚝 선 정조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서사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조의 정치 개혁, 수원 화성 건설, 실학자 등용 등 역사적 업적들을 생생하게 재현하면서도, 송연과의 30년에 걸친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 정조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실제로도 의빈 성씨는 1762년 궁녀로 입궐했으며, 14살의 어린 나이에 정조의 후궁 제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 드라마의 설정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서진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정조라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었고, 한지민은 순수하면서도 강인한 송연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이순재의 영조 연기는 역대 사극 중 가장 뛰어난 군주 연기로 평가받으며, 드라마의 무게감을 더했다.
물론 일부 역사적 고증의 오류나 다소 과장된 액션 장면 등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산"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시대를 초월하는 리더십과 개혁의 의미, 그리고 권력과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모습이었다.18세기 후반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며 실학자들의 활약과 수원 화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건축기술 등 조선 후기 문화의 정수를 화려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역사 드라마가 어떻게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정조라는 위대한 군주의 삶을 통해 현대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한 "이산"은, 시대를 초월하는 사극의 힘을 증명한 대표적인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