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드라마 산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시즌제 드라마’의 본격적인 확산입니다. 202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단일 시즌 16부작 중심의 고정된 포맷은 점차 해체되고, 세계관과 캐릭터를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시즌제 구조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시즌제 도입의 배경, 한국형 시즌제의 특징, 그리고 그 가능성과 한계까지 함께 살펴보며, 한국 드라마 산업의 미래 방향을 전망합니다.
시즌제 도입의 배경: 왜 바뀌기 시작했을까?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16부작 완결이라는 고정된 포맷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변화는 기존 구조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배경은 OTT 플랫폼의 확산입니다.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쿠팡플레이 등의 글로벌 플랫폼이 드라마 유통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미국식 시즌제 구조에 익숙한 해외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에서도 연속성 있는 시리즈물을 원하게 된 것입니다. 단발성보다 캐릭터와 세계관이 확장되는 서사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제작사 및 플랫폼의 장기 수익 확보 목적입니다. 단일 드라마는 흥행 여부에 따라 성패가 갈리지만, 시즌제가 되면 하나의 IP로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시즌1이 성공하면 후속 시즌, 스핀오프, 굿즈, 웹툰 등으로 콘텐츠를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됩니다. 이는 마케팅 효율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플랫폼 충성도를 높이고, 광고·PPL·해외 판권 수익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창작자 중심 제작 구조의 확립입니다. 시즌제가 정착되면 작가와 감독은 단기간에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 캐릭터를 천천히 구축하고 서사를 유기적으로 전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 ‘완성도 중심 제작 환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입니다. 실제로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 클라이맥스스튜디오, SLL 등은 시즌제 기획을 전제로 한 드라마 개발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한국형 시즌제 드라마의 주요 특징
한국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확산되는 과정은 기존 미국식 시즌제와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한국형 시즌제는 몇 가지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시청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첫째, 옴니버스 형식의 변형 시즌제입니다. 대표작으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가 있습니다. 동일한 인물과 공간을 유지하면서 각 시즌마다 개별 에피소드와 테마를 달리해 독립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구현했습니다. 이는 시청자들이 부담 없이 진입하면서도 캐릭터에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둘째, 장르 중심의 시즌 유지와 유연한 캐스팅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보이스> 시리즈는 매 시즌 새로운 사건과 인물 구도를 도입하면서도, 장르적 정체성은 유지합니다. 시즌마다 배우들이 일부 교체되고 줄거리의 결이 달라지지만, 전체적으로는 통일성 있는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경이로운 소문>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시즌을 확장하며 캐릭터 라인업을 재정비했습니다.
셋째, OTT 기반 드라마에서 시즌제가 일반화되고 있음입니다. <D.P.>,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들은 시즌1 종료 후 후속 시즌이 기획 또는 제작 중입니다. 이는 몰아보기(Binge-Watching)를 선호하는 OTT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 패턴과 맞물리며, 제작사 입장에서도 시리즈형 콘텐츠를 꾸준히 공급할 수 있는 안정적 구조를 만들어 줍니다. OTT는 회차·시즌 수 제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창작 유연성도 높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형 시즌제는 ‘미국식 정통 시즌제’와는 다른 구조지만, 국내 시장과 시청자 특성에 맞는 하이브리드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시즌제 드라마의 미래: 기회와 한계
시즌제 드라마의 확대는 한국 콘텐츠 산업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지속 가능한 IP 비즈니스 모델 확립입니다. 콘텐츠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즌을 거듭하며 세계관과 캐릭터가 누적되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2차 저작물이 가능해집니다. 이는 단순한 방송 수익을 넘어 웹툰, 웹소설, 게임, 굿즈, 팬미팅 등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게 해줍니다.
두 번째는 창작 중심의 시스템 강화입니다. 시즌제가 정착되면 작가와 PD가 단기 성과에 쫓기기보다는 장기 플랜을 세우고, 고퀄리티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더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세 번째는 글로벌 팬덤과의 지속적 소통입니다. 시즌제를 기반으로 형성된 팬덤은 각 시즌이 끝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며 커뮤니티를 유지합니다. 제작사는 이를 활용해 굿즈 출시, 티저 공개, 인터뷰 콘텐츠 등으로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브랜드 가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한계도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즌 간격에 따른 시청 이탈입니다. 후속 시즌 제작까지의 시간이 길어지면, 초반 팬층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배우 섭외, 제작 예산, 일정 조율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시즌제의 연속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시즌1의 성과에 지나치게 의존해, 후속 시즌이 제작 취소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제 드라마는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산업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향후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결론
2020년대 후반, 한국 드라마 산업은 단순한 완결형 포맷을 넘어, 세계관 중심의 시즌제 구조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습니다. 시즌제는 창작의 자유, 콘텐츠 확장성,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글로벌 시청자와의 소통에도 유리한 구조입니다. 제작환경과 인식의 변화가 이어진다면, 한국형 시즌제는 앞으로 드라마 시장의 핵심 모델로 자리잡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