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후반은 한국드라마 산업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으로 확장되던 시기였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서울’이 있었다. 서울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며 문화와 감정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이 시기의 드라마들은 서울의 거리, 건물,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시대의 감성과 사회의 현실을 표현했다. 본 글에서는 2010년대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한 한국드라마들이 보여준 영상미, 사회적 메시지, 그리고 서사의 진화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서울의 일상과 감정을 담은 드라마의 부상
2010년대 후반의 드라마들은 서울을 단순한 무대로 소비하지 않았다. 도시의 골목, 지하철, 사무실, 카페, 그리고 하늘 아래 복잡하게 얽힌 사람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대표적인 예가 tvN의 <나의 아저씨>이다. 회색빛 조명 아래 펼쳐지는 을씨년스러운 서울의 풍경은 중년 남성의 지친 삶과 청춘의 외로움을 그대로 반영했다. 또 다른 예로 <호텔 델루나>는 서울의 중심, 고층 빌딩 사이에 자리한 환상적인 호텔을 무대로 한다. 현실의 서울과 초현실적인 세계가 공존하는 설정은 2010년대 후반 K-드라마의 미학적 실험정신을 상징한다. 드라마 속 화려한 CG와 네온사인은 도시가 가진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으며, 이는 ‘서울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시청자에게 심어주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실제 촬영지는 팬들의 관광 코스가 되었다. 성수동 카페 거리, 한남동, 연남동, 북촌 한옥마을 등은 드라마 속 감정이 녹아든 ‘감성 장소’로 재탄생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배경 소비를 넘어, 서울의 공간이 문화 콘텐츠로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을 통해 그려진 사회적 계층과 현실의 대비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구조적 특성은 드라마의 서사에도 깊이 스며들었다. 2010년대 후반의 대표작 <SKY 캐슬>은 강남의 부유층을 배경으로 입시 경쟁, 부의 세습, 가족의 허위의식을 비판했다. 이 작품은 도시의 고급 아파트 단지를 통해 ‘닫힌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와 반대로 <응답하라 1988>은 서울의 변두리 쌍문동을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미를 강조했다. 화려하지 않은 골목길 속에서도 희망과 연대가 존재함을 보여주며, 도시의 양극화 속에서도 인간적 온기를 잃지 않은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을 조명했다. 또한 <미스터 션샤인>은 1900년대 초 서울의 근대화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와 도시의 변화를 한꺼번에 담아냈다. 경복궁, 한옥, 서양식 건물들이 공존하는 장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변화와 저항의 무대’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시기 드라마의 중요한 특징은 ‘공간을 통한 사회적 해석’이었다. 서울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계층적 긴장과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는 주제적 장치가 되었다. <비밀의 숲>에서는 서울의 검찰청, 도심 오피스, 회색 빌딩 숲이 부패한 권력의 상징으로 기능했고, <동백꽃 필 무렵>은 지방 소도시와 서울의 대비를 통해 인간관계의 진정성과 도시인의 고립감을 동시에 조명했다. 또한, 2010년대 후반은 OTT 플랫폼의 확산기이기도 했다.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이 서울의 모습을 접하게 되면서, “서울은 곧 K-드라마의 얼굴”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특히 외국 팬들은 드라마 속 서울의 풍경 — 한강의 다리, 남산타워, 홍대 거리 등 — 을 실제로 방문하며 ‘K-콘텐츠 관광’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서울을 무대로 한 연출과 미장센의 진화
2010년대 후반 한국드라마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영상미의 영화화’였다. <도깨비>, <비밀의 숲>, <미스터 션샤인>,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은 영화 못지않은 카메라 워크와 색보정을 통해 서울의 풍경을 예술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드론 촬영 기술과 야경 연출의 발전은 서울의 미장센을 새롭게 만들었다. <도깨비>의 광화문 장면은 캐릭터의 고독과 운명을 상징했고, <비밀의 숲>의 회색빛 도심은 인간의 냉정함을 드러냈다. 또한, <호텔 델루나>의 도심 야경은 서울이 가진 현대적 아름다움과 초현실적 상상력을 동시에 표현한 사례로 꼽힌다. 이 시기의 감독들은 서울의 구체적 장소를 스토리의 일부로 설계했다. 예를 들어 <미스터 션샤인>은 경복궁과 한옥을 통해 과거의 서울을 복원했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양재동 병원 세트를 통해 도시 속 인간 관계의 밀도를 그려냈다. 이렇듯 서울은 ‘감정의 장소’이자 ‘이야기의 구조’로 진화했다. 영상미 외에도 사운드와 조명은 서울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의 아저씨>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은 회색빛 도시의 정서를 완성시켰고, <도깨비>의 OST ‘Beautiful’은 도시의 밤을 감정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이처럼 서울은 드라마의 시각적·청각적 언어 속에서 하나의 ‘감정적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서울 드라마의 세계화와 문화적 파급력
서울을 배경으로 한 2010년대 후반 드라마들은 단순히 국내 시청률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세계적으로 사랑받았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미스터 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킹덤> 등은 서울을 비롯한 한국적 공간을 세계 시청자들에게 낯설지만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각인시켰다. 특히 <킹덤>은 조선시대 배경이지만, 서울의 현대적 연출 기법을 적용해 ‘한국적 콘텐츠의 현대적 감각’을 구현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K-드라마가 단순히 지역적 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스토리텔링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서울은 이제 ‘K-드라마의 상징’이자 ‘문화적 자본’으로서 기능한다. 드라마의 촬영지, 인물의 직업, 공간의 상징성은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맞물려 있다. 그 결과, 서울은 단순히 이야기가 펼쳐지는 무대가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적 아이콘이 되었다.
2010년대 후반의 서울은 한국드라마의 진화를 이끈 핵심 무대였다. 이 시기의 드라마들은 서울의 빌딩과 골목, 밤과 낮, 화려함과 외로움을 교차시키며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현실을 동시에 담아냈다. 서울은 더 이상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중심이자 감정의 언어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시청자에게 “도시 속에서도 인간적인 따뜻함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K-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발판을 마련했다. 앞으로도 서울은 한국드라마의 핵심 무대로서, 다양한 이야기와 시각적 실험의 장이 되어 새로운 세대의 감성을 이끌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