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드라마 ‘대행사’는 광고업계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정통 오피스 드라마입니다. 단순히 직장 내 갈등이나 커리어 성공담을 다루는 것을 넘어서, 한 여성 인물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어떻게 리더로 성장해 나가는지를 심도 깊게 그려냅니다. 특히 광고 대행사라는 생소하면서도 창의적인 환경을 배경으로 하여, 현실적인 감정선과 구조적 문제를 함께 풀어내며 시청자들의 큰 공감과 몰입을 이끌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등장인물 간의 관계, 업계 내 경쟁, 그리고 개인적·조직적 성장을 중심으로 ‘대행사’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분석해보겠습니다.
인물관계 – 심리와 조직이 얽힌 고밀도 관계망
드라마의 중심축은 고아인(이보영)이라는 인물입니다. 고아인은 VC그룹 이라는 광고 대행사에서 처음으로 여성 임원이 된 인물로, 그 자체로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배경도, 인맥도 없이 철저히 실력만으로 올라온 그녀는 철벽 같은 성격과 완벽주의적 태도로 조직 내 입지를 다져왔습니다.
고아인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업무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녀를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조직 내에서는 외톨이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지지 않으며, 감정적 연대를 피하려 합니다.
이와 대조되는 인물이 강한나(손나은)입니다. 그룹 회장의 딸로, 마케팅 본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온 인물입니다. 초반에는 ‘금수저’로 비춰지며 고아인과 날카롭게 대립하지만, 점차 광고 업무의 현실과 고아인의 진정성을 체감하면서 점점 변하게 됩니다. 강한나는 고아인을 통해 진짜 리더십을 배우고, 고아인 역시 강한나와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법을 익혀갑니다.
최창수(조성하)는 그룹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내부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고아인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보는 인물입니다. 동시에 그는 고아인의 능력을 누구보다 높게 평가하며, 때로는 견제자이자 때로는 협력자로 기능합니다. 이 양면적인 관계는 드라마 전체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또한 고아인의 팀원인 강한수(조복래)와 조은정(전혜진)은 광고2국의 핵심 실무진으로, 각각 카피라이터와 AE(Account Executive)입니다. 강한수는 능청스럽고 현실적인 성격으로 팀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조은정은 꼼꼼하고 책임감 있는 성격으로 고아인을 실질적으로 서포트합니다. 이들의 존재는 고아인이 조직 내에서 점차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가도록 하는 감정적 통로이기도 합니다.
경쟁 – 광고업계의 생존과 전략을 그리다
‘대행사’는 광고 대행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경쟁’이 서사의 핵심 동력입니다. 이 드라마가 기존 오피스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단순히 직장 내 정치 싸움이나 승진 경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광고업계의 구조적 특성과 생태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입니다.
광고 프레젠테이션 장면에서는 치열한 아이디어 경쟁, 클라이언트 설득 전략, 팀 내 브레인스토밍 과정 등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고아인은 이러한 경쟁에서 누구보다 강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빠른 기획력, 타깃에 대한 명확한 분석, 프레젠테이션 스킬까지 모든 면에서 완성형 리더입니다.
하지만 이 경쟁은 개인의 역량만으로 승리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상사의 눈치, 클라이언트의 갑질, 부서 간 이기주의, 정치적 압박 등이 얽히며 광고 한 건을 따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력 이상입니다.
고아인은 이 복잡한 생태계 안에서도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움직입니다. 고객의 기획안을 무리하게 수용하기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와 장기 전략에 기반한 제안을 통해 진정성 있는 광고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팀원들과의 갈등도 빚어지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성장하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특히 강한수와 조은정과의 호흡은 이러한 경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강한수는 위기 상황에서 유연한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제시하고, 조은정은 꼼꼼한 실행력으로 프로젝트를 완성시킵니다. 고아인은 점차 이들에게 의지하게 되며, 경쟁에서 ‘함께 이기는 방법’을 터득해갑니다.
성장 – 감정과 리더십의 진화
‘대행사’의 진짜 주제는 고아인의 ‘성장’입니다. 이 드라마는 커리어의 수직 상승만을 성공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적, 인간적, 리더십적인 변화와 성숙을 진짜 성장으로 보여줍니다.
고아인은 초반에는 업무 효율성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감정의 여지를 두지 않고, 사람보다는 결과를 앞세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팀원들의 피로, 감정, 의견, 가치관에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조은정의 고충을 처음에는 업무적 비효율로 받아들이지만, 이후 그녀의 책임감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며 팀워크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강한수와는 종종 충돌하지만, 그의 현실적인 판단이 팀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 인정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강한나와의 관계 변화는 고아인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는 권위적인 상사와 배경 좋은 신입 간의 대립이었지만, 이후 서로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며, 진정한 동료이자 리더로 함께 성장해갑니다.
리더십 측면에서도 고아인은 변화합니다. 초반에는 독단적이고 권위적인 스타일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협업, 경청, 신뢰 중심의 리더로 진화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리더가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그녀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결과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상명하달식 조직에서 수평적 팀워크로 전환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직장 드라마를 넘어선 감정 성장 서사
‘대행사’는 단순히 광고업계에 대한 이야기나 여성 임원의 성공 스토리가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직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간의 감정, 관계, 성장, 리더십이라는 보다 보편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를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고아인이라는 캐릭터는 기존의 여성 주인공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연애 대상이나 도덕적 구심점으로 소비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신념, 고통과 상처, 변화와 책임을 스스로 감당하는 주체적인 인물입니다.
광고라는 배경은 매우 효과적인 장치였습니다. 창의성과 현실, 이상과 타협, 관계와 결과 사이에서 늘 줄타기하는 이 업계는 현실적인 공감대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강한나, 최창수, 강한수, 조은정 등 각 인물들이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고아인의 변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 주체로 그려졌다는 점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스스로 묻게 만듭니다. “나는 어떤 리더인가?”, “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진짜 성장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대행사’는 단지 한 편의 드라마를 넘어 현대 직장인 모두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