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의 틀을 넘어서, 복잡한 인물 심리 묘사와 정교한 구조적 구성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작품입니다. 기존의 감성 멜로드라마에서 복수 서사로 영역을 확장한 김은숙 작가의 변화는 매우 전략적이며 치밀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김은숙 작가가 '더 글로리'를 통해 보여준 서사 구조의 핵심 요소들과, 그로 인해 완성된 드라마의 몰입도 높은 흐름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서사 기획력 - 전개 구조의 짜임새와 방향성
김은숙 작가가 만들어낸 '더 글로리'의 전개 구조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기획력에 기반한 구조적 장치들이 돋보입니다. 이야기는 단선적이거나 예측 가능한 흐름을 따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지속시키며, 주요 인물의 감정과 서사를 입체적으로 펼쳐나갑니다. 드라마 초반, 문동은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유도할 뿐 아니라, 이후 복수의 동기와 명분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복수’로 축약될 수 있는 이야기를, 김은숙 작가는 사회 구조적 문제, 권력의 편향성, 그리고 복수의 윤리성 등 다양한 시선을 녹여 복합적으로 구성합니다. 이러한 기획력은 단순히 소재에 대한 접근이 아닌, 서사의 설계 자체에서 출발하는 깊이 있는 창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선을 활용한 구성 방식이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작은 대사 하나, 장면 하나도 후반부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하면서, ‘다시 보고 싶은 드라마’로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복선과 회수, 엇갈린 타이밍의 전개는 김은숙 작가가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얼마나 정통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물의 다층적 구조와 감정의 축적 방식
김은숙 작가의 서사 구성에서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을 단순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은 일차원적인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는 고통을 겪었지만 무너지는 대신, 고통을 ‘계획’으로 전환시키는 인물입니다. 이때 그녀의 복수는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닌, 긴 시간 동안 내면에 축적된 정서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서사의 깊이가 더해집니다. 가해자 박연진 역시 단순 악역으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가정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죄책감보다는 ‘들킬까 두려운’ 불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은숙 작가는 이처럼 선과 악의 구분보다는 현실 속 인간의 다면성에 주목하며,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각 인물은 사회적 배경, 관계망, 개인적 결핍 등 다양한 요인을 통해 복잡한 성격 구조를 갖게 되고, 시청자는 이들 간의 심리적 긴장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됩니다. 조연 캐릭터 역시 기능적 존재가 아닌,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를 강화하는 장치로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강형남 캐릭터는 딸을 학대로부터 지키지 못한 아버지로서의 죄책감과, 문동은을 돕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드라마의 윤리적 중심축을 형성합니다. 이는 김은숙 작가의 치밀한 캐릭터 설계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구조적 반복과 상징의 활용 - 서사의 감정 설계
‘더 글로리’는 반복과 상징을 통해 감정선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합니다. 김은숙 작가는 한 장면을 단순히 보여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맥락을 달리한 반복을 통해 시청자에게 감정의 잔상을 남깁니다. 문동은이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학교 체육관을 배경으로 한 과거의 폭력 장면 등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이러한 반복은 시청자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정서적 공명을 일으키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상징적 이미지 또한 다채롭게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바둑’은 단순한 취미 요소가 아니라, 문동은의 삶과 복수의 전략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바둑의 수 싸움처럼, 그녀의 복수는 즉흥적이 아닌 치밀한 계산을 기반으로 진행되며, 이는 서사 전체에 일관성과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더불어 회차마다 특정 테마나 감정이 중심에 배치되며, 마치 독립적인 단편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는 시청자가 전체 흐름 속에서도 각 회차의 메시지와 감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이처럼 김은숙 작가는 감정을 단순히 서사 속 결과로 소비하지 않고, 감정 자체를 서사의 리듬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축합니다.
‘더 글로리’는 단지 복수를 그린 드라마가 아니라, 서사의 전략적 기획, 감정의 층위 구성, 반복과 상징의 활용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김은숙 작가는 기존의 멜로 중심 서사에서 탈피하여,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한 다층적 서사 구조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드라마나 콘텐츠 기획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김은숙 작가의 서사 방식에서 스토리 구성의 정석과 감정 설계의 기법을 반드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의 지평을 넓혀갈지 기대해봅니다.